나를 울린 냥이

2012. 7. 11. 20:14 | Posted by 가i아

꼭 요렇게 생긴 녀석이었다. 그런데 양 발에 흰양말을 신고 있었다, 세탁을 않해서 꼬질꼬질한. 흰색의 속옷도 온통 지지분했다. 목 주변의 하얀 갈기가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녀석이었다.

 

 

퇴근길, 집에 거의 다가갈 무렵이었다. 차도 위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 분명 고양이였다. 피해서 주행해야 할 정도로 차도에 나 앉아 있었다. 정차하고 다가가는데 그림처럼 그대로 있었다. 바짝 다가 앉아 말을 건네는데 쳐다보지도 경계하지도 않은 채 요동 없이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분명코 무슨 일을 당했거나 겪었거나 해서 제정신이 아닌 듯, 정신은 차렸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체념하고 있는 듯 , 그랬다.

 

인도로 옮겨다 놓고 그냥 가기가 불안할 정도여서 점퍼로 감싸 안고 차에 싣고 15분 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달렸다. 점퍼 안에서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있도록 계속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혹,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생을 마감하는 것은 아닐까? 주인 없는 냥이라면 치료 후 집으로 데려가야 하나? 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만난 곳을 기점으로 하여 주인을 찾아보아야 하나? 그나 저나 별 탈이 없어야 하는데, 혹 크게 다친 것은 아닐까?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막 어두워지는 무렵이어서 상태를 살필 수가 없었고 또한 겁이 나서 들여다 보지도 않았지만, 안아 들어올릴 때에 축 늘어지는 것이 기운이 하나도 없었고 배와 다리 부분이 지지분하게 젖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었다.

 

병원에 도착하였고 대기하고 있던 여자분이 응급 상황을 외쳐주었고 간호사가 나와서 병실로 데리고 들었갔고, 마이크로칩이 심어져 있기에 주인을 찾아 전화하면 된다고 하였고, 다친 곳은 없고 단지 심하게 더럽다고 하였다. 결론은, 너무도 노쇠하여 그루밍을 않하니 최근 들어 연이어 내린 비에 그 지경으로까지 더러워진 것이며, 어쩌다보니 정신줄을 놓고 차도에 널부러져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혹, 치매?!

 

응급 상황이라 외쳐주고 녀석이 좋은 사람 만난 것이 행운이라며 내내 어깨를 다독여준 고마운 여인을 뒤로 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병원을 나설 때 비로소 울음이 그치면서 내내 울고 있었음을 알았다.

 

내 눈에 띄었으니 망정이지 로드킬 당했으면 어쩔뻔 했니!

 

고약한 녀석.

 

12/07/12 목요일에 이어서 쓴다.

 

퇴근길에 병원에 들렀다. 마침 어제의 간호사 언니가 있었다. 엊저녁엔 마이크로칩 기록을 조회하여 주인에게 전화걸었더니 15분 만에 50대로 보이는 동양인 커플이 데리러 왔더란다. 외상은 보이지 않지만 원하면 녀석을 검진해 보겠다고 말했더니 됐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냥이 목욕을 시키는 등 위생 관리 해주라고 당부해서 보냈다고 한다.

 

녀석의 이름은 'Mal'이라고 한다. 나이는 14세..할아버지^^;;  사람의 나이로 계산을 해 볼까? 생 후 처음 두 해는 일년이 사람의 15년이고 그 담부터는 매년 일년이 사람의 4년이라고 하니깐,  [(15x2)+(4x12)]=78세..@@

 

그런데, Belmore Rd 어디에 산다고 하는데 내가 발견한 곳은 Blackwood Rd였다. 집 앞도 아닌 곳 차도에 그렇게 털부덕 주저앉아 있었던 연유가 무엇일까. 간호사 언니의 말로는, 노쇠한 것을 감안해 볼 때 필경 어딘가 아푸거나 병났거나 이상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그러나, 보호자가 허락을 않하니 검사해 볼 수가 없는 노릇이라고. 또한, 다시 한 번 녀석이 구조되어 병원에 오게 되면 반려동물 관리 소홀의 책임을 물어야겠다고도 했다.

 

중성화 수술이 되어 있고 목에 목줄을 착용하고 있으며 전화받고 15분만에 달려온 것을 보면 어느정도 책임감있는 보호자가 분명한 듯하여 그나마 안심된다. 부디 단골 병원이 있어서 보호자가 녀석을 데려가 점검받았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녀석을 감싸주었던 점퍼가 차 안에 그대로 있다. 혹시나 Tommy에게 않좋을까 염려되어 집안으로 들여오지 않은 채로. 주말에 별도로 세탁하여야 하겠다.

 

그런데 어젠 어둑한데다가 경황이 없어서 그랬는지, 확인차 털색을 물어보니 ginger 생강색이라고 한다. 목 주변과 양말 그리고 속옷 등이 흰색이니 'ginger and white'가 되겠다. 그래, 조 위 사진 속의 냥이보다 외투 색깔이 쪼매 짙었더랬다.

 

꼬질꼬질한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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